
이 영화를 처음 본 관객의 약 60%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라고 반응했다는 설문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저도 처음 관람했을 때 화면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우주와 끊임없이 전환되는 장면들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상징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이 작품은 제 인생 영화 목록에 올랐습니다. 혼란스러운 영상 뒤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면,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했는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됩니다.
멀티버스 세계관과 혼란스러운 시작
영화는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여기서 평행 우주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를 의미합니다. 주인공 에블린은 평범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 여성이지만, 어느 순간 수많은 평행 세계의 자신들과 연결되면서 혼돈에 빠집니다.
처음 40분간 영화는 관객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저도 이 구간에서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세탁소, 세무서, 쿵푸 영화 세트장,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처럼 생긴 우주까지 장면이 쉴 새 없이 전환됩니다. 여기에 B급 코미디 특유의 엉뚱한 유머와 화려한 의상들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더욱 난해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은 의도된 장치입니다. 영화는 매트릭스 시리즈나 마블의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처럼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설정을 차용하면서도, 훨씬 더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되기 때문입니다.
에브리씽 베이글이 상징하는 허무주의
영화 속 악당 조부투파키가 만든 '에브리씽 베이글'은 이 작품의 핵심 상징입니다. 모든 토핑이 올라간 베이글이라는 뜻의 이 물체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고 있지만 결국 텅 빈 검은 구멍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니힐리즘(Nihilism), 즉 허무주의를 시각화한 장치입니다. 여기서 니힐리즘이란 삶에 본질적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을 말합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검은 원은 불교 철학의 엔소(圓相)를 떠올리게 합니다. 엔소는 선불교에서 깨달음, 공(空), 무한을 상징하는 원형 그림입니다. 제가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깨달은 건, 이 베이글이 단순히 '무의미'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불교의 공 사상에서 '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MZ세대가 겪는 현대적 허무주의와도 연결됩니다. 202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42%가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성공한 모습, 즉 '다른 선택을 했을 나'를 끊임없이 보면서, 현재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런 현대인의 심리를 에브리씽 베이글로 포착했습니다. 모든 것을 동시에 바라는 욕망이 결국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제3의 눈과 관세음보살의 지혜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마에 눈을 붙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힌두교와 불교의 '제3의 눈(Third Eye)', 즉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아즈나 차크라란 깨달음과 직관을 관장하는 영적 에너지 중심점을 의미합니다.
더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여러 평행 우주를 동시에 경험하며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이 관세음보살의 이미지와 겹친다는 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생의 고통을 동시다발적으로 보고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영화의 멀티버스 설정은 이런 불교적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연결고리를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홍콩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세음보살 신앙이 깊게 뿌리내린 홍콩 문화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주인공이 수많은 우주를 넘나들며 각각의 자신으로부터 기술과 지혜를 모으는 장면은, 마치 천 개의 손으로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돌멩이 장면이 전하는 가족의 의미
제가 영화에서 가장 감동받은 순간은 두 개의 돌멩이만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화려한 액션도, 현란한 CG도 없이 오직 자막과 돌멩이 두 개로만 구성된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 장면은 실존주의 철학과 연결됩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삶에 본질적 의미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실존주의란 개인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본질을 규정해 간다는 철학 사조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결국 이 지점으로 귀결됩니다.
수많은 평행 우주를 경험한 주인공이 내린 결론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삶, 까칠한 남편과의 관계, 정체성 고민을 하는 딸과의 갈등. 이런 소소하고 불완전한 현실이야말로 소중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운명에 대한 자비와 친절,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낼 작품이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선택을 한 제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던 습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박탈감도 줄었습니다. 이 세계 속에 사는 저를 제가 더 아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화는 혼란스럽게 시작해서 따뜻하게 끝납니다. 화려한 멀티버스와 철학적 상징들이 결국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도대체 무슨 영화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왜 소중한지 알려주는 영화라고요. 처음 볼 때 따라가기 힘들더라도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극장을 나서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조금은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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